12th SOLO EXHIBITION

Deosup Art Gallery
전시 서문

말과 생각 (Langue et pensee)

 

‘말’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실체인 단어다. 그래서인지 동물 중에 말(馬)이 있다는 사실은 필연적이고도 적당한 언어유희를 제공해왔다. “말이 말을 한다.”랄지, 잊을만하면 다시 소환되는 추억의 말장난. 그런데 어쩌면 그저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할 법하며 별 재미도 없는 이런 어폐를 왜 우리는 의미 있게 곱씹을까. 새삼 박예지의 이번 전시를 통해 생각해본다. 말의 의미는 재미 위의 어떤 영역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저 말이 좋아 청소년기부터 10년 간 프랑스에 가 말에 관한 여러 경험을 했고, 작업의 소재도 말인 작가에게 그 말이 아닌 말(Langage) 역시 작업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사실을 듣고 상기되는 것은, 기억, 감정, 관계, 순환과 같이 우리에게 늘 추상적이어서 어려운 삶의 과제들이 어떤 소재를 만나 풀어나가질 때 갖는 의미일 것이다. 박예지에게 말은 말 이상이었다.
여기서의 말은 어떤 말일까, 일일이 병기하지 않는 불친절함처럼 말은 우리에게 늘 유실된 정보들로 내달린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그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 작가의 스스로 치열하게 써내려간 노트에서 발견한 문장,“무의식을 지배하고자 뇌속임을 해보았다.”는 고백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과 생각은 마치 실과 바늘, 천둥과 번개처럼 얽힌 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다른 형태로 같이 간다. 그러므로 언어의 현실 반영론과 구성론의 논쟁, 랑그와 빠롤의 우열 경쟁이 사실상 종식된 우리 시대, 다시 돌아가는 말과 생각의 오묘한 동반 관계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주요 언어인 스틸 입체 작업으로 말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내달렸으니 말장난 아닌 말장난을 쳐볼까. 말을 치졸하게 대하는 태도를 말할 때 “말꼬리 잡는다”고 하는데, 박예지는 “말머리를 잡는다”. 사실 말은 짐승이므로 ‘말대가리’라고 해야 맞는 말이라는 건 다 아는 말일 것이므로 말도 사람처럼 생각하는 동물로 치환해주는 ‘말머리’라는 말은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시작하느냐부터 그 시작의 시작은 무엇인가, 즉 어떤 생각에서 나온 형태인가를 생각게 한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병적으로 동어반복을 싫어하는 필자가 이번에는 ‘말’과 ‘생각’이란 말을 작정하고 반복한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꼬여 있거나 엉켜 있다가도 풀리고 흘러내리는 말과 생각의 흔적들은 단단하지만 물렁물렁한 조각(이라기보다는 어떤) 형태로 실체를 곱씹는다.
 
글/배민영(예술평론가)
전시 후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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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 en Franç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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